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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역

카작에서 드립니다 (9월 12일 칼럼 - 김낙인 목사) Publish on September 15,2010 | 오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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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윤경
댓글 1건 조회 14,324회 작성일 10-09-1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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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김낙인 목사님이 올리신 글이 있어 같이 나누기를 원하여 올립니다.

제가 미처 알지 못하거나 보지 못한 부분들입니다.


       교우 여러분 평안 하십니까? 저는 이 장로님과 함께 지난주일 하와이를 떠나 화요일 저녁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도착했습니다. 그 밤을 박희진 선교사님 댁에서 자고 아침 6시에 출발하여 11시 30분경에 드디어 선교사역지인 우수또베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 다 부숴진 집에서 우리 교회 선교팀원들과 산타클라라 선교팀원들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5일 만에 만나는 것인데도  아주 오랜만에 만난듯이, 오랜 고향친구 만난듯이 그렇게 반가워 하였습니다. 아마 외지에 나오니 더 그런가 봅니다.

       그 동안의 사역은 주로 안경사역과 사진사역 이었습니다. 지역이 가난하다 보니까 안경을 맞춰 써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사진을 찍은 적이 오래된 사람들이라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끝없이 몰려오는 사람들 속에서 열심히 기쁨으로 섬기는 선교팀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들이 이들에게는 너무나 특별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지역에 잔치가 되었습니다. 군수님이 나오시고 지역 지도자들이 나와서 감사를 표해 주었습니다. 몰려온 사람들이 기다리는 동안에 어른들을 위한 전도가 진행되고 아이들을 위해서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어 가게됩니다.

       이 지역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1992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후 카자흐스탄은 민족주의가 일어나 카작 말을 하는 사람들을 우대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러다보니 그 동안 러시아 말로 살아 왔던 일세들은 말 때문에 일찍 직장을 빼앗기고 특별히 고려인 일세들은 어렵사리 연해주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자리매김을 하였는데 다시 연해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늘었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아픔이 생겼답니다. 끊임없는 이민의 여정입니다.

       이곳 우수또베의 선교센터 상황을 보면 지난번 우리 교회에서 드린 $5,000로 약 2에이커의 땅을 사서 다져 놓았습니다. 그리고 전에 있던 집의 옆집을 사서 연결하는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집앞에 약 4,000sq정도의 건물을 청소년 문화  센터로 짓고 있습니다.  이곳은 10월이면 겨울이 오게 되는데 적어도 눈이 오기 전에 기초를 놓고 지붕까지 덮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애쓰고 있습니다. 내년 다시 이곳을 방문할 때에는 아주 훌륭한 건물과 아울러 넓은 땅, 그리고 시설을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교회, 아이에아 교회, 산타클라라 교회가 연합하여 이루어 가는 프로젝트입니다. 서로의 힘을 함께 모으니 더 큰 일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선교의 특징을 들라면 협력선교입니다. 지난번 필리핀 선교도 협력선교로 증폭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는데 이번 우수또베 선교도 세 교회의 연합과 아울러 이곳에 있는 사역자들이 함께 함으로 연합하여 더 좋은 선교효과를 얻게 된 것입니다. 교회간의 선교정보 교환, 교회 별 장점에 따른 선교, 현지 사역자들의 통역과 식사준비로 효율적인 선교를 이뤄 가고 있습 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은 앞으로의 선교는 협력선교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수또베 사역을 마치고 박박디 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우수또베에서 어려웠던 고려인들이 농토를 찾아 이주해서 세운 마을이랍니다. 알마티에서 끝없이 펼쳐진 광야를 3시간을 달려가니 박박디 라는 마을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벌써 미국에서 고려인들이 온다고 많은 마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경과 사진, 이것이 그렇게 파워풀한 사역의 도구가 된다는 것이 참 신기하였습니다. 또 너무나 고마워 하였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라 남녀 모두가 손은 발바닥처럼 굳어졌지만 마음들은 얼마나 따뜻하고 부드러운지 모릅니다.

       83세 되신 문선진 옹은 선글라스 하나를 얻어 끼고는 너무나 좋아하셨습니다. 노안에 햇빛을 받으면 더 나빠지게 되니까 선글라스를 끼세요... 하고 드렸  더니 신바람이 나셨습니다. 그리고 수 천리 떨어진 곳에서 고려인들이와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냐고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하셨습니다. 어머니 등에 업혀 원산항을 떠나 우수또베로 온 이야기, 우수또베를 떠나 40년 전에 이곳 박박디로 이주하여 모래톱을 일구어 마을을 세운 이야기, 자기는 배우지 못하여 고생을 했지만 자식들은 다 글을 읽어 큰 도시에 나가 돈을 벌고 산다는 이야기, 83세 된 인생 나그네의 이야기를 듣자니 자꾸 마음이 뻐근해 왔습니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이 노래를 아냐고 하시며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83세가 되셨지만 목소리는 하나도 흩어 지지 않았습니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 여 년에 청춘만 늙어
       부평 같은 내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 봄도 푸르련만 
       버들피리 꺾어 불던 그때가 옛날.

       마치 고복수씨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전에는 청승맞아서 싫고 무력하게 느껴져 싫었던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문 할아버지가 부르는 이 노래가 왜 오늘은 찬송가처럼 들리는지 모르겠습 니다. 어쩌면 한 동안 제 마음속에 이 노래가 문 할아 버지의 얼굴과 함께 들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아픔이 있는 이곳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우리들을 통하여 전파되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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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식님의 댓글

박인식 작성일

<p/>오윤경 집사님께 박수를 보내며 </p>
<p/>&nbsp;</p>
<p/>교회에서나 교회 웹사이트에서 다른 목사님들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예가 아니나 </p>
<p/>감리교인 누구나 알고 계신 분이니 한마디하고 지나가렵니다.&nbsp; </p>
<p/>2005년에 조영진 목사님이 좋아 와싱톤교회로 전국 지도자 대회에 갔었고 </p>
<p/>다음해에 달라스 좋은씨앗교회에서 찬송 잘하시는 장동일 목사님과 김낙인 목사님을 </p>
<p/>만났습니다.&nbsp;&nbsp; </p>
<p/>김낙인 목사님은 그레고리&nbsp;펙 같은 훤출한 키에 인상 좋으신 분이 강단무대에 우뚝서서 </p>
<p/>말씀을 전해주실 때에 은혜롭고 감동이었습니다.&nbsp; </p>
<p/>우리교회에 한번 모시고 부흥회로 말씀을 듣고 싶었는데 아직 기회가&nbsp; 없었지요.&nbsp; </p>
<p/>인간미가 흘러넘쳐 다른 목사님들도 좋아하시고 잘 따르시는 것 같았습니다.&nbsp; </p>
<p/>이번에 저희교회와&nbsp; 함께 연합으로 선교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한 일입니다. </p>
<p/>&nbsp;</p>
<p/>머리에서 가슴으로&nbsp;내려오는데 평생이 걸리신 분도 계시고 가슴에서 손과 발로 가는데 </p>
<p/>죽을&nbsp;때까지 힘드신 분들도 많다 하십니다.&nbsp; 오윤경 집사님께서는 머리로 가슴으로 발과 </p>
<p/>손으로 마음껏 사랑하시고 섬기시니 얼마나 기쁘고 신나십니까?&nbsp; </p>
<p/>옆에서 보고있는 저도 기쁘고 신납니다.&nbsp; </p>
<p/>&nbsp;</p>
<p/>오윤경 집사님, </p>
<p/>이번 선교 갔다오신 따끈따끈한 이야기를 묶어서 뉴스레러에 한번 올려주세요. </p>
<p/>기다리겠습니다.&nbsp; 정말 수고하셨어요.&nbsp; 감사합니다.&nbsp; </p>
<p/>&nbsp;</p>
<p/>&nbsp;</p>
<p/>&nbsp;</p>

우리교회가 함께 섬기고 있는 선교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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