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4월 10일 2023년
Publish on April 13,2023Office
우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삶의 높은 봉우리를 향하고 있는 자기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 보다 남들이 추구하는 삶을 모방하며 따라가는 경우에 그럴 가능성이 더 커지지요. 하지만 일단 목표로 삼았던 봉우리에 올라선다 해도, 주변에 더 높은 봉우리가 서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상대적 낭패감에 빠져 들기 십상입니다. 내가 오르던 봉우리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던 사람에게, 그것은 깊은 생채기를 내기도 합니다. 무작정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려 하는 이에게 봉우리는 그저 고갯마루에 불과한 것이라는 말처럼, 모든 것을 허사로 만드는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방향은 알 수 없지만, 매순간 우리의 삶은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긴 여정에 비유하기도 하고, 그 여로에 서 있는 스스로를 나그네로 부르는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자로 ‘도(道)’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길이란 뜻입니다. 한자를 풀이해 보면, 도는 머리카락 휘날리며 걸어가는 모양의 ‘착(辵)’이라는 글자와, 생각을 의미하는 ‘머리 수(首)’자로 이루어진 회의문자 입니다. 걸어가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사람의 형상을 문자화한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가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간다고 할 때, 그 의미는 삶을 돌아보며 생각해 본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인생의 여정은 높은 봉우리에 오르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기 보다, 매순간 성찰하며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과정에 더 무게 중심을 가진 말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이는 인생을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죽음을 향해 시간을 소비해 가는 과정이라는 말입니다. 육신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비관적인 시각입니다. 그렇다고 틀린 말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정의 최종 목적지를 생각할 경우,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날마다 죽음으로써, 새롭게 거듭나는 실존적 종말을 겪는 사람에게 생명은 시간의 한계를 뛰어 넘어 영원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깨달은 바울은 세상의 높은 봉우리가 아닌 십자가의 좁은 길을 선택했습니다. 눈에 띠지만 고갯마루에 불과한 봉우리의 허상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생명의 길을 향해 간 것입니다.
남들이 다 가려고 하는 봉우리를 오르기 보다, 오히려 기피의 대상이 될 만큼 좁은 길을 가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신앙을 일종의 모험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편한 걸 포기하고 불편한 걸 선택하는 모험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편리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입니다. 반면 신앙은 자기 중심에서 주님 중심으로의 이동을 의미합니다. 두렵다고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신앙 만큼 합리적 선택도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을 꿈꾸는 이들에게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사는 것처럼 합목적적인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고갯마루에 불과한 봉우리의 주변을 맴돌며 방황하는 삶에서 벗어나 믿음의 자리로 과감히 한걸음을 내딛는 주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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