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라라 연합감리교회를 위한 비전
Publish on January 21,2013홍삼열
제가 지난 3월 23일 수요예배 때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교회의 비전을 함께 나눈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해서 이곳에 올려놓습니다.
그때 설교를 듣지 못하신 분들, 또 현재 우리가 3부 예배의 시작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교회의 방향에 대해 알기를 원하시는 분들께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1. 예배가 살아 있는 교회 저는 우리 교회의 모든 예배가 살아 있는 예배, 하나님을 충만히 경험하는 예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주간에 Santa Rosa에 있는 수도원에 가 있었습니다. 주일이 되어 가까운 곳에 있는 미국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실이 5-600명이 들어가는 예배실이었습니다. 예배가 토요일 저녁; 주일 9:30; 11시에 세 번 있었고 box형 교회입니다. 예배형식이 굉장히 간단합니다. 10분 찬양; 5분 광고; 15분 찬양; 설교 30분; 마지막 찬양 5분. (헌금은 현관 여러 곳에 헌금함에 각자 넣게 합니다). 그리고 끝 (축도도 없습니다). 제가 예배를 드리면서 받은 인상은 찬양이 가수의 공연 같다는 점입니다. (회중이 따라 부르기 힘든 곡들, 그러나 듣기는 좋은 곡들을 연주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따라 부르지 않고, 찬양팀은 완전 professional들이고, 회중석 깜깜하게 하고, 무대는 색색 조명들을 바꾸어 가면서 분위기를 띄웁니다. 이렇게 한 동안 예배드리고 나서 밖에 나가니까 눈이 부셨습니다. 저는 이건 좀 문제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람들의 참여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응이 없습니다. 그냥 시간 되어서 공연 보고 예배드렸다고 생각하고 집에 가는 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여기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출석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성인만 1000명은 족히 될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드리는 것은 일명 “구도자 중심의 예배”(seekers oriented worship)를 극단화시킨 것입니다. 좀 과하게 말하면,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철저히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지고 예배를 계획한 것입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가기는 싫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예배의 기본을 버리면서까지 이렇게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방향으로는 가지 않을 것입니다. 구도자 중심의 예배이지만, 이렇게 극단으로 나가지 않은 한 예가 밴나이스의 church on the way라고 생각합니다. 오순절 계통의 교회인데 제가 밴나이스에 있을 때 여러 번 참석했던 교회입니다. 이 교회도 공식 예배가, 토요일 저녁이 1부 (주일에 봉사할 사람들 위주로); 그리고 주일에 여러 번 예배가 있습니다. 이곳의 예배 형태도 아주 간단한데, 한 30분 찬양을 하고 (찬양 중간 중간에 합심기도의 시간들이 있다); 30분 설교를 하고; 영상으로 광고를 하면서 동시에 헌금을 하고; 그 다음 찬양하고 축도하고 끝이 납니다. 이 교회에서는 찬양팀이 공연을 하지 않습니다. 회중석을 절대 어둡게 하지 않고, 극장식으로 조명을 바꾸지도 않습니다.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을 회중과 함께 합니다. over하지 않습니다. 저는 예배의 형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형태이든지 예배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완벽한 예배, 근사한 예배를 드렸어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그 예배는 망친 예배입니다. 전통적인 예배이든 구도자예배이든 극장식 예배이든 그 예배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그 예배는 무조건 망친 예배입니다. 그런 예배는 결국 교회를 죽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에 따라, 문화에 따라, 연령층에 따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한국의 선교 초기에는 남자와 여자가 옆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면 절대 안 되었습니다. 이런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 은혜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만일 여자만 모이는 교회, 남자만 모이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면, 이게 은혜가 안 되는 것입니다. 현대에는 이런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 특정한 예배 형태가 잘못된 것이라기보다는, 시대가 변했는데도 이런 변화를 조금이라도 수용하는 “겸손함”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의 본질을 생각하기보다 옛날부터 그래 왔으니까 당연히 지금도 그래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교회 ministry의 본질을 망각하는 태도입니다. 교회가 왜 존재합니까? 교회는 기본적으로 남을 섬기라고 부름을 받은 것이지, 나 자신의 것을 즐기고 고집하라고 부름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변화가 필요할 때는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 예배의 본질을 지키는 신앙의 자세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전체적으로 봐서 젊어지기를 원한다면, 젊은 사람들이 원하는 예배의 형식과 내용을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한 자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는 예배를 하나 만들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열린 예배로 부를 수도 있고 젊은이 예배로 부를 수도 있고 구도자 예배로 부를 수도 있는데,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현대 젊은이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형식을 우리가 도입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키타 치고 드럼 치고 청바지 입고 일어서서 찬양 드리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이런 예배를 시도한 많은 교회들이 실패를 경험했는데, 그 이유가 본질을 취하는 대신에 형식만 따라했기 때문입니다. 열린 예배는 형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의도에 관한 것입니다. 교회 ministry의 기본 방향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편한 대로 자기중심의 ministry를 고집하면, 아무리 열린 예배 백 개를 만들어도 소용없습니다. 다 실패합니다. 우리가 내부지향적이 아니라 외부지향적이 되고, 현대의 젊은이들을 교회로 끌어들이는데 관심이 있다면, 우리의 마음가짐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궁극적으로 현재의 교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라면, 밖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내부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을 편하게 해줄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어떻게 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보다 잘 경험할 수 있게 도와주는가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면 교회는 활기차게 성장하는 것이고, 이게 안 되면 아무리 많은 시도를 해봐도 해보나 마나 실패로 돌아갑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교회는 제 구실 못하는 단체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산타클라라 교회가 예배가 살아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노년층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젊은 층도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2세들도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되면 우리 교회는 성장합니다.
2. 차세대를 키우는 교회 우리교회 인터넷 웹페이지에 보면, 산타클라라 연합감리교회 “사람을 키우는 교회”로 되어 있습니다. 이성호 목사님 때부터 있던 표현인데, 너무 적절한 표현이어서 저도 그대로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이민교회의 공통된 고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1세대와 2세대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 신앙생활하는 교회가 거의 전무합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민교회들이 교회에서 2세들을 키웠는데, 이 1세들이 자라서 30대 40대 50대가 되었는데, 이들을 포용하고 함께 가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가 차세대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정의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가 집에서 아이를 사랑으로 키운다고 할 때, 그 의미는 그들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조금 못 먹어도 아이의 미래를 위해 기쁘게 아이에게 투자하고, 내가 좀 멀리 드라이브해도 아이가 좋은 학교에 다니게 하기 위해 직장에서 멀리 집을 구하고, 내가 바쁘지만 아이의 학교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쪽에 시간을 먼저 할애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아이를 사랑으로 잘 키우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시각으로 볼 때, 우리는 우리의 2세들에게 충분한 배려를 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실수하고 있는 것이, 말로는 자녀들에게 신경 쓴다고 하고 그들이 우리의 미래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그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예배 시간 중 가장 편한 시간은 부모세대가 차지하고, 가장 좋은 공간도 부모가 차지하고, 아이들은 남은 것만을 줍니다. 재정도 배정을 할 때 아이들에게 우선권이 없습니다. 한인교회들이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자녀세대를 길렀으니 아이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자유를 얻었을 때, 떠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제가 올해 교회수첩을 준비하면서, 우리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하는 교회, 균형있게 성장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썼습니다. 사람의 몸에 특별한 병이 없고 건강하면, 자연히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자라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균형있게 먹고 균형있게 운동하고 병이 없으면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산타클라라 교회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불균형을 치료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자녀 세대와 1세대의 불균형, 오래 믿은 사람과 새로 믿는 사람의 불균형, 나이 드신 세대와 젊은 세대의 불균형, 이것이 치유되면 자연히 우리 교회는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2세대를 키울 수 있을까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건물과 시간과 재정에서 자녀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 세대가 큽니다. 현재 우리 교회는 공간의 제약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모임 공간이 부족합니다. 그럴 때 자녀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에게 필요하다면, 성가대 실도 양보하고, 대예배 시간도 양보하고, 친교실도 양보할 수 있는 마음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런 마음 자세가 아니면, 절대 우리 교회는 2세대를 품을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산타클라라 교회가 1세와 2세와 더 나아가 3세가 함께 신앙생활 하는 큰 그릇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오늘부터 자녀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자세, 우리가 그들의 미래를 위해 기쁨으로 희생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되면 우리 교회는 반드시 2세를 품는 풍성한 교회가 됩니다. 3. 제자를 키우는 교회보통 교회성장에 대해서 의견이 갈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성장 하면 양적인 성장을 떠올립니다. 교인수가 늘고 매주 들어오는 헌금이 늘고 등등... 반면에 어떤 분들은 그런 양적 성장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면서, 진짜 성장은 그런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 성장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배우고 세상에서 더욱 신자답게 사는 것, 이것이 교회의 진정한 성장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가 함께 가는 것이 정상적인 성장이라고 믿습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편안히 교회에 다니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는 더 작아지고 큰 교회는 더 커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난 몇 년간 depression으로 사회전반이 어려워지고 교회들도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는데, 이런 기간에도 꾸준히 성장하는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교회들일까요? 바로 대형교회들입니다. 작은 교회에 다니면 더 많이 헌금하고 더 많이 헌신해야 하는데 이게 부담이 되어서, 그런 거 안 해도 되는 대형교회들로 사람들이 몰리게 된 것입니다. 전체 교회들의 분포를 볼 때, 이런 식으로 양극화되는 것은 절대 건강하지 않은 현상입니다. 만일 어떤 나라에 중형 사이즈 기업은 거의 문을 닫고, 대기업과 소규모 기업만 주종을 이룬다면, 그 나라의 경제는 보나마나입니다. 아주 허약한 형태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중형교회들이 많이 있는 것이 건강한 형태인 것입니다. 숫자적으로 보면, 장년 200명 정도의 교회들이 주종을 이루면 이는 아주 건강한 형태인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 산호세 지역의 상황은 어떤가요? 이런 정도의 교회가 대부분인가요? 아닐 것으로 추측됩니다. 몇몇 큰 교회들이 있고 나머지는 작은 교회들일 것입니다. 교인수가 많다고 자동적으로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장을 이룬 교회는 아닙니다. 또 그렇다고 큰 교회는 항상 어떤 비윤리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가 양적으로 커졌다면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공존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산타클라라 교회의 성장을 출석인원이나 헌금의 양으로 재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얼마나 많은 제자가 양성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주님의 제자들을 키우고 그들이 맘껏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교회에 주님의 제자들이 많아지면, 자연히 전도되는 숫자도 늘고 헌금도 늘게 되는 것이지, 그런 외적 현상을 목표로 추구하면 곤란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가 제자를 키우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으로 훈련하고, 사역을 훈련하고, 직접 사역분야에서 도움을 받으며 일을 하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물질로 봉사로 헌신하는 이런 제자들이 많아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제자를 키우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가 우리 교회를 생각해볼 때 현재로서 가장 필요한 것이 서로를 섬기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좇아내라고 하시기도 하셨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으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지만, 우리 교회의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서로를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발을 씻기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죠? “선생이 이렇게 했으니 너희도 이렇게 따라서 하라.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라.” 또 마태복음 20:28절에 보면, “주님은 섬김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제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남을 섬기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바라기는 교회의 중직들이 먼저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목사와 장로님들이 먼저 섬겨야 다른 사람들이 섬깁니다. 정책을 결정하는 위원장님들이 먼저 섬겨야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섬깁니다. “자기는 섬기지 않으면서 왜 나보고 섬기라고 해!” 이런 말이 자주 나오는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를 키우는 교회와는 거리가 먼 교회입니다. 그래서 목사와 장로님과 교회의 임원들이 먼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주차자리를 양보하고, 새신자들을 위해 편안한 예배시간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편안함을 포기하는 등등의 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교회가 성장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의 상황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일자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내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들, 특히 우리 교회에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을 섬기는 방법입니다. 새로 교인이 오면 어느 시간이 지나면 교회에 봉사하고 싶어 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 봉사하려고 하면, 기존에 이미 봉사하고 있는 분들이 이걸 못 받아들입니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나설라고 해!” 교회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이런 것이 교회의 전체 분위기이면 그 교회는 망합니다. 새교우들이 볼 때, 자기들끼리 꽉 쥐고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되면, 아예 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반복이 되면 그 사람은 교회를 떠납니다. 그래서 비록 내 마음에는 안 들고 실수가 있을지라도, 새로운 사람들, 아직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일할 수 있도록 내 자리를 내주어야 교회가 성장합니다. 부엌일에서, 꽃꽂이에서, 성가대에서, 각종 봉사의 기회에서, 어떤 분야이든 기존에 열심히 일 하시던 분들이 자기 것을 남들에게 넘겨주는 섬김의 자세가 있을 때, 교회에 새사람들이 붙고 교회가 부흥합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각 사역분야별로 boundary에 너무 지나치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진짜 전도하고 기도하고 배우고 양육하는데 힘을 집중하지 못하고 (즉 ministry에 집중하지 못하고), 사소한 것이나 절차를 가지고 싸우고 변호하는데 시간과 힘을 낭비하면 교회가 성장하지 못합니다. 각 위원회에서 집중해야 할 것은, 내 위원회가 교회의 전체 방향에 부합하여 잘 가고 있는가? 더 잘 그쪽 방향으로 가기 위해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이런 것들에 신경쓰며 힘을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위원회나 사람이 내 영역에 침범을 했다고 느낄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런 실수가 한 두 번이고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라면, 교회의 덕을 위해 절대 소모적인 싸움을 시작하면 안 됩니다. 한두 번 실수는 그냥 넘어가주는 아량, 즉 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교회 전체에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으면, 이 boundary 침범의 이슈로 공격을 당할 때 몸을 사리게 되고, 그 다음에는 아예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 차세대를 키우는 교회, 그리고 주님의 제자를 키우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그런 교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목회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여러분들이 이 비전에 동참을 하신다면, 하나님은 우리 산타클라라 교회를 부흥 발전시켜 주실 것입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성인 1000명 정도가 되면 (아이들까지 1300정도가 되겠죠) 이곳에서는 교육관 2층을 올려도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 정도 되면, 제 소망은 저희 교인들 200가량을 떼어서 지교회를 세워 개척시키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면 좋은 점은 자동적으로 지도력이 갈려서 일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점입니다. 이 정도 사이즈면 충분히 자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고 경쟁력도 있게 됩니다. (또 이정도 사이즈의 교회가 많아지면 우리 산호세 교회들을 전반적으로 건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교회를 개척시키면, 하나님이 더 많이 채워주실 겁니다. 그 다음에 또 그 숫자가 차면 또 개척시키고, 이런 식으로 3-4번을 하고 싶은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저의 목회방향과 vision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었는데,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면 여러분이 기도하시는 중에 동일한 음성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함께 한 마음으로 비전을 추구함으로 이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굳건히 더욱 풍성히 세워나가게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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