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들끼리는 사회법정에서 재판을 하면 안 되나요?
Publish on June 30,2015홍삼열
가끔 교인들 사이에 법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회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회
법정으로 가지고 가는 경우가 있다. 더 나아가서 교단 차원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교단 문제를 사회 법정으로 가지고 가는 경우를 본다.
기독교인으로서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미
초대교회에서도 교인들 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으로 가지고 가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6:2-3절에서 이렇게 책망하였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이것은 마지막 날에 구원받은 성도가 주님과 함께
세상을 심판하게 되는 상황을 전제로 하는 말인데, 그런 위치에 있는 성도가 이 세상의 “지극히 작은 일”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고 결국 성도의 심판 아래에 있게 될 세상 사람들에게로 가서 그들에게 판결을 요청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교회 내의 문제는, 더 나아가서 성도 사이의 문제는 교회 내의 기구에서
해결해야지 절대로 세상 법정으로 가서 해결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성경의 기본 가르침인 것이다.
이런 가르침을 접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니까
현재에도 우리는 이런 저런 상황을 고려할 필요 없이 무조건 교회에게 이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고, 교회가
어떻게 판결을 내려주든지 그것이 마지막 결론이라고 생각하여 무조건 수용해야 할까? 아니면 그런 성경의
가르침은 고대 신정(神政)사회의 단순한 사회
시스템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의 복잡한 사회체계와 구성원 간의 세분화된 역할 분담의 상황에서는 잘 맞지 않는다는 논리하에 그런 규정을
사문화(死文化)된 것으로 취급해야 할까? 아니면 성경의 가르침은 영원무궁토록 우리에게 유효하니까 성경에서 그런 가르침을 제공했다면 우리는 그 가르침에 담겨 있는 본질적 원리를 추출하여
그것을 현시대에 맞게 적용해야 하는 것일까?
고린도전서 6장에 기초하여 원론적인 설명을
하자면 교인들은 서로간의 문제를 가지고 세상 법정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 그 이유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교회/교인은 ‘신분적으로’
세상/세상사람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2절) 그리스도인은
기본적으로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이고 비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재판을 받을 때 어디에서 관할하는가(jurisdiction)의 차이가 있다. 즉 그리스도인은 비록 세상에
살지만 원래 신분이 하늘나라 소속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세상 사람들은 원래
소속이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는 마치 미국 군인이 해외에
파견되어 활동할 때 어떤 범죄의 혐의가 발견되는 경우 종종 현지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대신에 원래 소속인 미국 관할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것에
비교할 수 있다.
둘째로 교인들이 세상 법정에서 서로를 상대로 소송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교회는
‘윤리적으로’ 세상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윤리 수준에 따라 서로에게 소송을 걸어도 되지만 교인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6:7절에 보면 교인들은 서로간에 소송거리가 생겼을 때 차라리 한쪽이 희생함으로써 세상 법정에서 소송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교인들 사이에 소송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허물이라는 것인데 그 이유는 성도들은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같은
아버지를 모시는 한 가족의 형제자매들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의 차원 이전에 서로를 향하여 자기 양보와
희생이 없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경우 차라리 본인이 불이익을 당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해도 적어도 그리스도인은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신분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세상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교인간의 소송의 문제를 교회
밖으로 가지고 가지 말라는 것이 고린도전서 6장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21세기의 현실을 보면 그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 간에 일어나는 사건이 꼭 신앙과 교회에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그것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복잡한 형사 민사상의 사건들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사실 고린도전서 6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곳에서 다루는 문제도 이미 교회의 영역을 넘는 사안들인 것이다. 즉 사람들 간에 불의를
행하고 속여 빼앗는 문제를 비롯한 “이 세상의 일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일상에 관계된 분쟁사건들, 신앙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사안들에 대해서도 교회에서 재판권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교회 정치에 관한 사안이라면 당연히 그 문제를 교회 법정에서 해결하는 것이 맞다. 신앙에 관해서 어떤 것이 정통이고 어떤 것이 이단인지를 판결하는 것도 당연히 교회 법정에서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신앙과 별 상관이 없는 민사, 형사상의 사건은 경우가 다르다. 가령 교회 안에서 성폭력의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자. 그럴 경우 교회
법정에서 사건을 심리하고 판결하고 처벌도 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더 근본적인 차원으로 들어가서 성경의
권고를 따른다고 하면서, 피해자에게 세상 법정에 가지 말고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라고 권하면서 그냥 꾹 참고
넘어가라고 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교단 정치의 문제나 신앙의 문제를 교회 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는 비기독교인들에게 가서 판결을 요청하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법질서상 교회가 다룰 수 없는 복잡한 민사, 형사
사건들까지도 교회 법정에서 해결하려 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 태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혹시 예수님이라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원칙을 적용하시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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