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10월 10일 월요일 Publish on October 10,2022 | 관리자
페이지 정보
본문
어느새 찬바람이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살랑이는 바람이 마음을 간지럽히는 계절이되었지만, 지난 2월 푸틴(Vladimir Putin)의 침공으로 벌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되어서 여전히 지구촌 한 곳을 멍들게 하고 있습니다.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타인의 고통>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개입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진 바 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전달된 수많은 전쟁 영상과 메시지를 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폭력적이고 참혹한 순간을 촬영한 이미지만 기억할 뿐, 그 아래 담긴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편입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들’에게 벌어진 일인 탓입니다. 오히려 지속적인 자극과 충격에 점차 감각 조차 무뎌져간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을 겁니다.
이렇듯 전쟁과 폭력은 우리의 양심을 무디게 만들고, 모두에게 엄청난 희생과 불필요한 대가를 요구합니다. 이에 반해 기독교의 복음은 갈등과 분쟁의 해결책으로 전쟁과 폭력이 아니라 화해의 길을 제시합니다. 악에 직면해서 싸움을 부추기는 감정적이고 즉각적인 대응을 하기 보다 기도와 공감의 정신으로 갈등의 축소(De-escalation)를 위해 화해를 촉구하는 것이지요. 우리 연합감리교회의 사회원칙만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개탄하고 국가 간의 모든 분쟁의 평화로운 해결을 촉구합니다.” 전쟁을 개탄하는 것은 우리에게 속한 일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다윗도 고백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할 일을 인간이 자의대로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처음부터 기독교적 양심은 폭력과 전쟁이라는 가혹한 현실과 맞서 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악의 세력이 끊임없이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좌절시키지 못하도록 막아왔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싸움은 영적 전쟁이지 서로의 생명을 해하는 폭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누군가를 적으로 삼고 그를 제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전(聖戰)이라는 주장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를 신의 영역으로 격상시키려는 욕망이 빚어낸 악의 화신일 뿐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며, 이스라엘의 역사가인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막강한 화력을 앞세운 러시아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은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전쟁은 그들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승리는 일시적인 욕망의 충족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인 듯 보이나 십자가에서 이룬 사랑의 열매만이 영원한 승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의 고통을 십자가 위에서 대신 지신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도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며 사는 길만이, 이 가혹한 싸움을 승리로 끝낼 수 있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