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나요? Publish on September 30,2014 | 홍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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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상태”의 이론을 주장하는 김기동은 낙원을 천국으로 가는 중간단계로, 무저갱을 지옥으로 가는 중간단계로 설명한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이론을 제시하는가? 우선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한 3:13절)라는 구절을 근거로 예수님 이전의 사람들 중에 천국에 간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여기에 보면 인자/예수님만이 하늘에 올라간 경험이 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같은 구약의 신앙인들은 다 죽어서 어디에 갔다는 말인가? 김기동의 이론에 의하면 그들은 천국에 간 것이 아니라 낙원 혹은 스올에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자고 있다가 예수님의 재림때 육체로 부활하여 마지막 심판을 받고 나서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구약의 의인들과 신약의 신앙인들이 죽으면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낙원에 간다고 하는 성서적 근거가 무엇인가? 누가복음 23장에 보면 두 행악자가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서 형을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 한 강도는 예수님을 조롱하지만 다른 강도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님의 나라가 임할 때 자기를 기억해달라고 요청한다. 그가 이렇게 요청할 때 예수님이 그에게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낙원을 약속하셨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 23:43) 그리고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사흘 후에 부활하시는데 그때 무덤 앞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신다. 마리아가 너무나 기뻐서 예수님을 붙들려고 했을 때 예수님이 그녀에게 말씀하신다.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요한 20:17)
이상의 두 성경구절과 이미 앞에서 언급한 요한복음 3:13절의 말씀(“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을 종합하면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아직 예수님 이외에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간 사람이 없고, 예수님은 돌아가신 날 곧장 행악자와 함께 "낙원"에 가셨고, 예수님 본인도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는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고 한다면,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사흘 동안 계셨던 곳은 아버지 집(천국)이 아닌 다른 곳, 즉 낙원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흘 후 예수님은 부활했지만 그날 함께 낙원으로 간 행악자는 부활했다는 말이 전혀 없으므로 그 행악자를 비롯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낙원에서 천국에 갈 날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또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온다.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 들어가 불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고 있고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러면 이 아브라함의 품이 위에서 말하는 낙원일까? 김기동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낙원은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 신자들이 들어가는 곳이고, 아브라함의 품은 예수 이전의 의인들이 들어가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주장하는 “중간상태”의 이론이다.
그렇다면 이런 이론이 정말 성경의 가르침일까? 정말 천국과 낙원과 아브라함의 품이 각기 다른 것인가? 그렇지 않다. 김기동의 “중간상태” 이론은 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엮어서 쓴 소설에 불과하다. 우선 김기동은 요한복음 3:13절의 말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라는 구절을 예수님 이전에는 천국에 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런데 이 구절이 정말 그런 뜻일까? 그렇지 않다. 만일 그렇다면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들려 올려진 에녹과 엘리야는 어디에 갔단 말인가? 김기동의 주장대로 천국이 아닌 “아브라함의 품”에 간 것일까?
요한복음 3:13절의 문맥을 제대로 이해하면 그런 해석이 나올 수가 없다. 유대인의 선생으로 알려진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와서 구원에 대한 가르침을 요청했을 때 예수님은 거듭남의 진리, 즉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진리를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는 이 가르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이 어떻게 다시 한 번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느냐는 의문을 표시하며 육체적인 차원의 이해에 갇혀 있는 한계를 드러내었다. 이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이것이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하늘에 있다가 내려온 인자만이 하늘의 비밀을 가르쳐줄 수 있는데, 아직 너는 수준이 안 되기 때문에 (육체적 수준에 갇혀있기 때문) 하늘의 비밀을 알려주어도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의 요점은 “나만 하늘에 올라갔다”가 아니라 “나만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현재 누구에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아직 죽어서 천국에 올라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만일 천국에 올라갔던 에녹이나 엘리야가 다시 내려와서 지금 예수님 앞에서 이 말씀을 듣고 있다면, 그들도 이 “하늘에 올라간 자”에 포함될 것이다. 그래서 이 구절은 현재까지 하늘에 있다가 내려온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고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구절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다는 주장을 도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구절을 기초로 예수님 이전의 신앙인들은 천국에 간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인 것이다.
또 한 가지 김기동이 주장하는 것은 낙원/음부(=중간상태)는 영혼의 활동이 완전히 정지하는 “수면상태”라는 것이다.(요한 11:11, 고전 15:18, 살전
4:13-14) 그런데 정말 이곳에 있는 영혼은 아무 활동도 하지 않는 완전 수면/대기상태에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나사로가 음부의 불 가운데서 너무나 심한 고통을 받을 때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그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자신의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과연 이것이 영혼이 수면을 취하며 아무 활동도 하지 않는 중간상태 이야기일까? 이건 분명히
죽은 영혼의 다양한 활동이 설명되어 있는 천국과 지옥 이야기이다. (참고. 계시록 2:7절에 보면 요한이 환상 중에 본 낙원 이야기가 나오는데, 역시 여기에서도 구원받은 영혼의 활동이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김기동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 비유라고 해석한다. 자신에게 불리한 구절은 비유적으로 해석해버리는
전형적인 이단의 수법이다.
또한 김기동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나서 부활하시기 전 사흘 동안 가 계셨던 곳이 바로 이 낙원/음부라고 주장한다. 베드로전서 3:19절과 4:6절에 보면 예수님이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고”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셨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예수님이 중간상태에 가신 것을 의미하는 구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만일 그곳의 상태가 정말 영혼이 잠자고 있는 무활동의 상태라면, 예수님이 그곳에 가서 메시지를 전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차피 다들 잠자고 있어서 듣지 못할텐데...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성경에서 죽음을 자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사람이 죽으면 중간/대기상태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죽으면 인간의 모든 현세적 활동이 정지한다는 의미이다. 현상적으로 볼 때 사람이 잠이 들면 모든 활동이 정지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래서 성경에서 “주 안에서 죽은 사람”을 잠 자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잠자는 기간”을 염두에 둔 표현이 아니라 단지 “깨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임을 알아야 한다. 이쪽에서 자고 저쪽으로 깨어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성경은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절대 잠잔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예수와 상관없는 죽음은 수면이 아니라 다시 깨어날 가망이 없는 인생의 종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기동은 불신자도 죽으면 중간상태로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성경은 사람이 죽으면 곧 바로 영원한 기쁨인 천국이나 불의 고통이 있는 지옥으로 간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품이나 낙원은 천국과 다른 표현이 아니라 동일한 한 가지를 의미하는 표현들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김기동의 중간상태 이론은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도 아니고 성경의 관심사도
아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생에 사는 동안 예수믿고 구원받게 하는데 관심이 있지 죽고 난 후에 정확히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육신이 죽고 나면 절대 운명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김기동이 주장하는대로 중간상태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이 이론을 우리가 꼭 알 필요가 있을까? 김기동 식으로 생각을 하더라도 낙원에 간 사람은 무조건 천국으로 가고 음부에 간 사람은 무조건 지옥으로 간다. 중간상태에서 운명이 바뀌는 일은 절대 없다. 그렇다면 왜 성경이 알려주지 않는 이론을 굳이 설명하려고 할까?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이런 식으로 성경에도 없는 내용을 마치 성경의 가르침처럼 제시함으로써 혹세무민(惑世誣民)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성경이 알려주는 것으로만 만족하면 된다. 그러면 구원받는데 지장이 없다. 오히려 성경이 알려주지 않는 것을 굳이 알려고 하고 설명하려고 하다가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이 알려주는 분명한 사항이 무엇인가? 이생에서 예수 믿고 구원얻는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가고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죽어서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죽은 영혼이 부활하여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서 마지막 심판을 받고 그런 후에 영원한 천국이나 지옥으로 보내진다고 기록된 내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때 최후의 심판을 받고 가는 천국/지옥과 사람의 육신이 죽고 난 직후에 가는 천국/지옥(혹은 낙원/음부)이 같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성경은 이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런 것들이 성경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그 둘이 같다면 동일한 내용을 다른 개념으로 설명한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만일 다르다면 육신의 죽음 직후에 가는 천국/지옥은 최후의 심판 이후에 가는 천국/지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태, 즉 각각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천상의 기쁨과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는 경험의 시작일 것이다. 이 정도만 알아도 구원받는데 지장이 없고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