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의 십자가 사건이 개인적으로 나와 무슨 상관이 있죠? Publish on January 07,2014 | 홍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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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들이 어린 자녀와 대화를 하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들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냥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그런 의문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질문들이 있다. 어느 목사님이 자녀와 대화를 하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예수님이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하는데 그것이 개인적으로 나와 어떤 연관이 있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알겠는데 꼭 짚어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은 솔직히 마음으로 느껴지지가 않고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와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설명해줄 수 있습니까?”
이것은 예수를 믿기 시작한 분들에게 종종 생겨나는 질문이고 또 신앙생활을 꽤 하신 분들에게도 생길 수 있는 질문이다.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2000년전의 사건이 어떻게 현재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의문이 계속 남게 된다.
이 문제는 기독교 신학에서 그리스도의 대속(代贖)과 대표성(代表性)의 개념으로 설명된다. 우선 대속의 개념을 살펴보자.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 세상에 자신의 능력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오직 죄와 상관 없으신 하나님만이 그 일을 해주셔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은 오직 하나,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대신 인류의 죄를 떠맡아 속죄하시는 것이다.
비유를 들면 이렇다.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다고 하자. 어떻게 그 물에서 나올 수 있을까? 수영을 못하기 때문에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물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아니면 옆에서 같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이 그를 구해줄 수 있을까? 둘 다 아니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든 밖에서 생명줄을 던져줄 수 있는 사람이든 어쨌든 자기는 허우적대지 않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출해줄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죄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 오직 죄와 상관이 없으신 하나님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서? 바로 죄없으신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온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온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나에게 어떻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가? 어떻게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속하신 ‘나의’ 구세주이가 되시는가? 로마서 5:12-19절은 첫 아담과 둘째 아담(예수 그리스도)을 비교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15절)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18절)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은 두번째 아담으로 오셔서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셨다는 것이다. 즉 원죄를 가진 인류의 조상인 아담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그 자체로 자동 죄인이 되는 것처럼 죄에서 해방된 인류의 조상이신 예수 안에서 거듭난 사람은 자동적으로 구원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표성의 원리이다.
비유를 들자면 이렇다. 어느 가정의 가장이 큰 빚을 졌다고 하자. 그러면 그 사람만 빚을 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 비록 자식들은 자기가 직접 빚을 진 적이 없지만 가정의 대표인 아버지 때문에 자동적으로 같이 빚을 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어느날 아버지가 어디서 돈을 구해서 빚을 다 갚았다면 아버지가 빚을 갚음으로해서 자식들의 빚도 다 갚아지는 것이 되는것이다. 어릴 때 빚문제 때문에 온갖 어려움을 당해본 사람은 이 대표성의 원리가 얼마나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지 실감할 것이다.
우리가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에게 속한다는 것이 이런 실질적인 영향이 있는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담의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인류의 대표가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나도 죄인이 되는 것처럼, 이제 새로운 인류의 대표가 되신 예수님께 속하게 되면 나는 자동적으로 죄인의 운명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온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당연히 ‘나의’ 구세주가 되시고,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 되는 것이다. 이런 개인적인 성격이 잘 드러나는 것이 로마서 8:1-2절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