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2월 20일 2023
Publish on February 23,2023관리자
금주부터 사순절이 시작합니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에 시작하여 부활절 전날인 성토요일까지의 사십 일을 뜻합니다. 사순절 기간 중에 있는 여섯 번의 주일은 그 안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사순절의 의미를 묵상하며 부활의 소망을 고백하는 "작은 부활절”로 지키도록 교회전통은 가르쳐 왔습니다. 사십 일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고, 공생애를 준비하신 기간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순절은 부활의 소망을 기다리며, 회개와 금식과 같은 영적 훈련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성찰하는 시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사순절 기간 동안 성도들이 자신을 절제하고 세상을 돌보는 봉사와 섬김에 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헌신하도록 권면해 왔습니다.
우리는 재의 수요일 예배를 통해 사순절의 의미를 묵상하며 다짐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예배 중에는 재를 이마에 바르며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고백도 합니다. 재를 이마에 바르는 의식을 통해 부끄러웠던 옛 삶을 청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려는 신앙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을 구성하는 원초적 기원인 흙의 의미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성경은 첫 사람인 아담을 흙에서 나와서 흙에 속한자라고 규정합니다. 인간이 흙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생명이 붙어있는 그 어떤 것도 다 흙에서 나와 삶을 영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성경말씀은 과학적으로도반박이 불가한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서양 속담 중에 "흙은 풀을 길러내고, 풀은 가축을 기르고, 가축은 인간을 기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풀, 가축, 인간은 독자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 사이에는 생태계의 순환적 흐름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의 생명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 또다른 생명의 흐름을 이어가는 역할을 하게 되지요. 그 때 흙은 모든 생명들을 품은 아기집이 되어 새생명을 잉태하는 수고를 하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어떤 이들은 땅을 태초에 하늘에 의해 수태된 생명의 산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생명의 터전을 내어 주며 포용하고 베푸는 풍요로운 안식처와 같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흙을 밖으로 쓸어 버리면 복이 나간다고 해서, 으레 마당을 쓸 때면 집 안쪽으로 쓸라고 한 것도 다 그런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흙과 땅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 까닭이지요.
하지만 흙이나 땅도 생기를 잃어버리면 헛된 것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재처럼 사라져 버릴 허망한 운명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 제 본분을 지키지 못하거나, 의미없이 거기에 그저 존재하는 정도라면 쓸모를 언급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운명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잃어버리는 순간, 육신은 한낫 잠간의 티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재를 이마에 바르며 다짐한 신앙 고백의 무게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풍에 날아가 버릴 재처럼 가벼운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땅을 옹골지게 딛고 서 있는 믿음의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이 묵직한 말씀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세상의 풍조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성도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