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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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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
    뒤끝이 없는 사람 Publish on August 13,2012홍삼열
    “나는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놓는 사람이 있다.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의 기분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 맘속에 담겨있는 모든 분노를 일시에 다 쏟아내는 사람이다. 사실 뒤끝이 없다는 것은 긍정적인 면이 있기는 하다. 한번 따끔하게 야단치면 그걸로 끝이 나야지 계속해서 심심할 때마다 그걸 다시 꺼내서 재탕 삼탕한다면 이는 분명히 주책이다. 특히 부부사이에는 뒤끝이 있으면 결혼생활이 평탄치 못하다. 잘못한 것에 대해 한 번 책망하고 넘어갔으면 됐지 심기가 불편할 때마다 그걸 다서 끄집어내서 상대방을 공격한다면 이는 유치한 행동이다. 그런 면에서 뒤끝이 없는 것은 좋은 덕목일 수 있다.그런데 뒤끝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감정 조절이 안 되고 분노 관리가 안 되는 것을 뒤끝이 없다는 말로 합리화시킨다. 이것이 문제다. 자신은 화를 남김없이 다 쏟아 낸 탓에 속이 후련해져서 그야말로 자기는 뒤끝이 없어졌겠지만 상대방은 그 뒤끝없음 때문에 너무나 큰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폭탄 터뜨려놓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 죽여놓고 나는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이는 너무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태도이다.성경에 보면 사람은 말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말은 단순히 생각의 표현수단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의 상태를 가늠케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서 남에게 상처를 주고 인격을 허무는 말이 나오면 그 사람의 영혼은 선하지 못한 것이다. 성경은 사람이 사용하는 혀를 가리켜 “불의의 세계” 혹은 “인생의 수레바퀴를 태우는 불”로 부르고, 이것이 사실은 지옥 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야고보서 3:6) 더 나아가 혀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종교생활을 열심히 해도 다 가짜라고 강하게 말하고 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1:26) 따라서 우리는 뒤끝이 없는 사람보다 말로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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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9
    눈감아 주는 것이 용서인가? Publish on August 02,2012홍삼열
    기독교인들 중에 용서하라는 마음의 명령을 받지만 실제로 용서할 수 없어서 괴로워하는 분들이 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자기에게 죽음의 고통을 안겨준 사람들을 향해 용서의 말씀을 하시는 것을 읽게 된다. “하나님,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뭘하는 지 모르고 있습니다.” 또 몇번을 용서해야 하냐고 묻는 베드로에게, 일곱번이면 충분히 용서하는 거냐고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끊임없이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성경을 아는 사람은 마음에 용서의 명령을 받는 상황에서 갈등한다. 예수님은 용서하라고 하고 나는 용서할 수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 용서의 문제로 마음에 갈등을 겪는 이유가 여러가지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적절한 처벌과 보상 없이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 충분히 벌을 받지 않았고 나에게 충분히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그걸 없던 일처럼 넘어가냐는 것이다. 아무리 예수님의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그런데 이렇게 용서와 처벌/보상의 문제를 일괄적으로 연계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오해하는 것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용서는 외형적인 처벌/보상과는 별 상관이 없다. 우리가 보통 이해하기로는 죄의 값을 치르게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용서한 것이고 또 손해 본 것을 눈감아 주면 그것이 용서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에서는 처벌을 하면서도 용서가 가능하고 또 처벌을 하지 않으면서도 용서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좋은 예가 민수기 12장에 나오는 미리암과 아론의 예이다. 모세의 누나와 형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였다. “하나님이 모세 너를 통해서만 말씀했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우리들 위에 군림하는거냐?” 이때 하나님이 진노하셨다. 하나님은 실제로 모세를 그들의 지도자로 세워주셨는데 그들이 이걸 알면서도 하나님이 주신 권위에 도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셨다. 그 결과 미리암이 문둥병이 들어서 피부가 하얗게 변했다. 이때 아론과 미리암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즉시 회개하였고 모세도 이들을 불쌍히 여겨 하나님께 용서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물론 하나님은 이들을 용서해주셨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하나님이 그들을 용서해주셨는데 이상하게도 미리암의 문둥병이 그 즉시로 치료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일주일 동안 진밖에서 문둥병이 걸린 채로 고생하다가 그 다음에 하나님이 치료해주실 때 미리암이 원래의 자리로 회복된 것이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이 미리암의 죄를 용서해주셨지만 그렇다고 처벌을 중지하지는 않으신 것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처벌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용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용서의 목적이 무엇인가? 사랑이 그 목적이 아닌가? 궁극적으로 용서를 통해 사람을 살리고, 더 나아가 공동체에게 유익을 주고 상처를 회복시키는 것이 용서의 목적이 아닌가? 따라서 잘못을 용서는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개인과 공동체를 살리려는 목적으로 처벌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처벌을 안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일 처벌을 받아야 할 개인이 진심으로 회개를 하는 경우에도, 그가 피해를 입힌 이웃이나 공동체가 아직 상처를 치유받기에 시기상조라면, 그래서 처벌이 필요하다면, 용서는 하지만 처벌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이런 경우에 용서를 한다고 하면서 처벌과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건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줄 착각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잘못을 무작정 눈감아 주는 것은 용서가 아니다. 처벌과 보상이 없어야 용서하는 것이라는 논리는 성경적이지 못하다. 용서는 겉으로 보이는 행위가 아니라 더 이상 원한을 품지 않는 마음의 평화이고, 처벌/보상의 면제가 아니라 그 사람을 살리는 사랑의 선택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명령으로 누군가를 용서하려고 할 때 우선 사랑의 원칙을 생각하자. 처벌과 보상을 요구해야 상대방에게 유익이 된다면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 참 용서이고, 처벌과 보상을 면제해주는 것이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된다면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참 용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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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8
    사이언톨로지가 뭐예요? Publish on August 02,2012홍삼열
    최근에 어떤 분이 저에게 사이언톨로지(Scientology)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톰 크루즈를 비롯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 종교를 신봉하고 있는데, 최근에 발생한 톰 크루즈의 이혼 사유가 딸에게 사이언톨로지를 강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신문기사가 있었다. 사이언톨로지는 SF소설가였던 론 허바드(L. Ron Hubbard)라는 사람이1954년에 시작한 이단교회인데, 미국에서는 1993년에 IRS에서 비영리단체로 인정을 받았지만, 캐나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나라에서는 이 단체의 반사회적 성격 때문에 아직 정식 종교단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단체의 주장을 들어보면 초대교회의 영지주의의 특징들을 많이 지니고 있다. 우선 이들은 구원은 우주의 비밀을 아는 지식으로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름도 Scientology 즉 앎의 학문인 것이다. 또한 이들은 Thetan이란 일종의 우주적 원리를 상정하는데, 이것은 우주를 움직이는 영원한 생명력이고 이것이 사람들 속으로 들어오면 영혼이 된다는 것이다. 현재 타락한 상태의 인간은 자신을 육체와 동일시하지만, 이것은 가짜에 불과하고 진짜 나는 우리 속에 담긴 이 Thetan인 것이다. 사이언톨로지를 믿으면 사람 속에 이것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더 나아가 이 Thetan을 통해 자신이 과거에 경험한 것들을 기억하게 되고, 이 기억속의 과거를 직면하게 되면 참 우주의 생명력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이 이렇게 우주의 생명력을 회복하게 되면, 자연히 영혼과 육체가 건강하게 되고 개인이 속한 사회가 정화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아주 흥미로운 전제가 있는데,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기억이 단순히 자신의 무의식에 숨은 개인의 과거 기억뿐만이 아니라 전생에 있었던 수많은 기억들도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영혼불멸을 믿고 전생을 믿고 윤회를 믿는다. 또한 기억을 되살리는데 꼭 필요한 “과학적 도구”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허바드가 고안한 E-Meter(진실탐지기)을 통한 최면요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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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단을 어떻게 식별하나? Publish on July 10,2012홍삼열
    주변에 보면 가족중에 이단에 빠진 사람이 있어서 전체 가정이 홍역을 치르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고 상식적으로 설득을 하려 해도 이미 이단에 빠진 사람은 귀를 틀어 막고 아예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가족이나 친구는 당연히 그 사람을 위해 계속 권면하고 기도해야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애초에 그들이 이단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 이단에 빠져 있는지를 잘 식별해서 그들을 미리 경계하는 것이다.이단에 빠진 사람은 자신은 절대 선이고 나머지는 절대 악이라는 이원론적인 생각을 한다. 2000년 역사를 가진 전체 기독교에 대항하여 그리고 현재 그 수많은 교회들에 대항하여, 소수의 무리인 자신들만이 성경의 진리를 꿰뚫고 있으며 자기들만이 구원받고 나머지는 멸망받는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편다. 또한 이들은 보통 상식있는 사람이면 하지 않을 말이나 행동을 서스럼없이 한다. 자신들이 지향하는 “선한” 목적을 위해 비윤리적인 행위들, 예를 들어 거짓말이나 노동착취도 정당화하고 이혼까지도 유도한다.또한 이들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성경의 신비로운 해석을 제시하면서 기존교회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정말 신기한 이야기를 해준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게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왜냐하면 2000여년간 그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생각해보지 못하고 한 번도 공식 기독교 사상의 표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이론을 자기들이 처음 발견해서 믿고 있다는 주장, 그래서 역사적으로 극소수인 자기들 무리만이 구원받고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다 멸망을 받게 된다는 주장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는 독선인 것이다.또 한 가지 이단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서 이외의 다른 권위를 주장한다. 예를 들어,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었으니 진짜 구세주가 아니고 자신들이 믿는 교주가 진짜 그리스도라고 한다든지, 성경만으로는 안 되고 성경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보충 자료가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들만이 사용하는 경전이나 교재를 더 중요시하는 등 기존교회와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누군가 이런 식으로 이상하게 믿는다고 느껴진다면, 비상식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남들이 다 틀렸다고 한다면, 이단일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그런 경우에 목회자에게 의뢰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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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6
    교회는 병원이다 Publish on June 28,2012홍삼열
    보통 비신자들이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인들을 향하여 단골로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교인들은 위선자라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는 착하게 행동하는 것 같은데 정작 사회에 나와서는 비신자들과 별 다르지 않게 산다는 것이다. 또 기독교인들은 교회 안에서 왜 그렇게 싸움을 많이 하는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서로 협력하여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텐데 어찌하여 교회 안에서 그렇게 싸우는지, 또 왜 그렇게 교회를 갈라서 나가는지 이런 것들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위선자들이라는 것이다.평생 교회안에서 생활을 해온 저의 입장에서 볼 때도 이런 비판이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목사로 일을 하고 있는 저에게도 이것이 마음에 큰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교인들에 대한 이런 비판이 사실은 역설적으로 교회의 존재 이유를 강변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비판은 적어도 교인들은 교회 밖의 사람들보다 더 진실되고 더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의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사실 교회는 이미 완전에 도달한 사람들이 모여서 자축하는 축하행사장이 아니다. 교회는 흠이 많은 사람 혹은 영혼에 병든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병을 치료하고 온전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병원인 것이다. 예수님 당시 “위선자”의 대표격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한 내용이 있다. 예수님이 사회적 약자들인 여자, 가난한 사람, 창녀,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그들의 삶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자기들같이 “온전한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죄인들”과 사귄다고 비난을 하였다. 이때 예수님이 하신 유명한 말씀이 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가복음 2:17) 그래서 교회는 병원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영혼의 병을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병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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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5
    크리스마스가 진짜 예수님 생일이 아니란 말이 있던데... Publish on January 05,2012홍삼열
    이 글은 제가 [섬기는 사람들] 10:6 (http://www.koreanumc.org/site/apps/nlnet/content3.aspx?c=kqLSIYOxGnF&b=5687987&ct=8059177)에 기고한 내용입니다.------------------------------------------------------------------------------초대교회 때부터 예수님의 생일에 대해 최소한 두 가지 전통이 있어왔다. 하나는 현재 우리가 성탄절로 지키는 12월 25일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주현절로 지키는 1월 6일이다. 그러나 역사적 고증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바는 그 두 날짜가 예수님의 생일과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성경의 기록과 당시 팔레스타인의 기후를 고려해 볼 때 예수님이 겨울에 태어나셨을 확률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복음서에서 목동들이 양떼들과 함께 들에서 잠을 자야 하는데 이스라엘의 겨울은 비가 많이 오는 추운 계절이기 때문이다. 또 당시 호적 등록을 위해 유대인들이 대규모로 각자 고향으로 이동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도 우기(雨氣)인 겨울에 일어났을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우리에게 세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첫째, 왜 성경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중요한 예수님의 생일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을까? 둘째, 어떻게 해서 12월 25일이 예수님의 생일이 되었을까? 셋째, 성탄절이 실제 예수님의 생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이상 우리가 성탄절을 계속 지켜야 할까?우선 첫 번째 의문점은 생일에 무관심한 초대교회의 독특한 문화를 이해하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초대교회가 생일에 별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로 증명이 가능한데, 우선 초대교부(敎父)인 이레니우스나 터툴리안은 교회의 주요 절기들을 다룰 때 성탄절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 3세기 교부인 오리겐은 바로(창 40:20)나 헤롯(막 6:21)같은 죄인들만 생일을 지키지 훌륭한 신자들은 절대 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주장하기까지했다. 이런 분위기는 현재 가톨릭교회에서 지키는 성인축일(祝日)의 전통에 그대로 남아있는데, 성인축일은 성인들의 생일이 아닌 순교일을 기념하는 것으로서 생일에 관심이 없는 교회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의 탄생일도 교회의 관심사항이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성탄날짜가 역사기록에 남지 않게 된 것이다.이제 두 번째 의문점으로 넘어가자. 어떻게 해서 12월 25일이 예수님의 생일이 되었을까? 12월 25일은 전통적으로 태양의 탄생(Natalis Invicti)을 기념하는 로마의 겨울축제일이었다. 당시 달력으로 12월 25일이 동지(冬至)가 되는데, 사람들은 태양이 이날을 기점으로 다시 커지는 것을 축하하여 대규모 파티을 열었던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4세기경부터 이 날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지키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태양이 그리스도를 설명해주는 아주 훌륭한 상징이 되기 때문이었다. 사실 세상의 빛(눅 2:32), 공의의 태양(말라기 4:2)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태양 축제일보다 더 적합한 날이 어디 있겠는가? 또 장차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실 예수님을 경축하기 위해 “정복되지 않은 자”(Invicti)보다 더 나은 상징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12월 25일에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참고로 현재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바로는 Julius Africanus가 221년에 그의 [연대기]에서 처음으로 12월 25일을 예수님의 생일로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이 주장은 다른 날짜들에 비해 그리 우세한 입장은 아니었고 최초의 종교회의인 325년의 니케아회의 이후에야 점차적으로 전반적인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한편 태양 탄생일이 예수님의 생일이 된 데는 토착화(土着化)의 의도가 다분히 있다. 태양 축제일이 이미 로마인들의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면, 기독교에서는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그 문화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기독교화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동지를 지내면서 대단한 술파티를 벌였다.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절대 거기에 가거나 술 취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목회적 차원에서 내부적으로는 신자들을 보호하고 외부적으로는 세속 문화를 기독교화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이 태양축일을 예수님의 생일로 정하게 된 것이다.이제 세 번째 의문점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성탄절이 실제 예수님의 생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우리가 성탄절을 계속 지켜야 할까? 여호와의 증인은 성탄절을 지키지 말아야 할 이유로 다음의 두 가지를 말한다. 첫째로 성탄절 날짜는 원래 이방축제에 해당하는 날이기 때문에 그 날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로 기독교가 옛날에 흥청망청 즐기는 이방축제의 습성을 채택한 결과 현재의 상업화된 성탄절의 모습이 생긴 것이므로 성탄절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그러나 위의 두 가지 주장은 잘못된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우선 성탄절이 태양축제일과 같은 날짜이기 때문에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탄절을 지킬 때 중요시하는 것은 날짜가 아니라 성탄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이지 "날짜"가 아닌 것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성탄의 의미를 무시한 채 노는 데 관심을 갖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교회절기의 상업화를 이방축제에 기원을 둔 날짜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한 논리이다. 왜냐하면 만일 성탄절이 다른 날짜에 지켜졌다면 현재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을까? 아닐 것이다. 신학적으로 볼 때 날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을 초월하신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시간 속으로 들어오셨다는 사실이다. 엄격히 말해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은 매일 기념해야 마땅하다. 우리가 매일 성탄일로 지켜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는 힘들고 한 날을 정해서 특별히 기념을 해야 할 텐데, 그렇다면 이미 전통으로 굳어버린 성탄절을 굳이 거부할 필요가 있을까?둘째로, 기독교가 태양축제일을 성탄절로 정함으로써 타락한 이방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현재의 타락한 형태의 성탄절까지 생겨났다는 논리도 역사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이방축일을 성탄절로 바꾼 데는 정반대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타락한 세상 문화와 타협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세상 문화를 거룩한 교회문화로 바꾸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술 파티의 문화를 예배의 문화로, 미신축제의 문화를 그리스도 축제의 문화로 바꾸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성탄절 날짜가 원래 태양축제일이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절대 창피스런 일이 아니다. 도리어 자랑거리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종의 문화선교의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세속문화를 기독교화 함으로써 세상에 거룩한 기독교적 삶을 전파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탄절을 지킬 때 날짜보다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고, 세속문화를 기독교의 문화로 변화시키는 문화선교의 입장에서 성탄절을 자랑스럽게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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