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은 왜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까?
Publish on February 05,2015홍삼열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들을 바라볼 때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왜 기독교인들은 제사를 드리지 않느냐는 것이다. 부모에 대해 효심(孝心)이 있는 사람이면 제사를 통해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기본 예의를 표시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독교인들의 입장은 제사는 단순히 부모님에 대한 효심의 표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우상숭배 혹은 귀신숭배이기 때문에 제사를
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의 차이는 처음 천주교가 한국에 도입될 때부터 있었고 이 문제 때문에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천주교는 한국에 처음 전파될 때 주로 서양학문을
도입하려는 서학파에 의해서 소개되었다. 종교적인 차원에서의
소개가 아니라 순전히 학문적인 차원에서의 소개였다. 당시 서학파 지식인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것은 성리학(性理學)의 사변적 공론이었다.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지식을 위한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당시의 성리학에 염증을 느끼고
실용적 학문을 추구하면서 서학관련 서적들을 탐독하였는데, 그러면서 서학의 물질적 측면인 기(器)에만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그것의 정신적 근거가 되는 이(理)의 세계, 즉 종교/철학에도 관심을 두었다. 이런 관심은 서양문화의 기초가 되는 기독교에 대한 관심으로 자동 연결이
되었는데, 이들은 천주교를 유교와 반대가 되는 사학(邪學) 즉 잘못된 학문이 아니라 유교의 상제(上帝)사상과 통하는 보유론(補儒論)적 체계로 믿었다. 즉 유교에서 하늘을 보는 입장과 기독교에서 하나님/하느님을 보는 입장이 근본적으로는 같은 것이고, 그래서 기독교는 충분히 유교를 사상적으로 보충해줄
수 있는 이론, 즉 보유론이라는 것이다. 이때까지만해도 적어도 서학파에서는
천주교를 사상적으로는 배척하지 않았다.
그런데 천주교가 보유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된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것이 일명 진산사건(신해박해)이었다. 이 사건은 1791년 신해년에 전라도 진산에서
천주교인인 양반 윤지충과 권상연이 조상제사를 폐지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처형된 사건을 말한다. 양반 윤지충은
1790년 말에 집안 대대로 시행해 온 조상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단지를 땅에 묻어버렸다. 당시에는 아무도 이것을 알지 못했는데 그 다음해 여름 그의 어머니 권씨가 별세했을 때 이 사실이 들통 나 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들이 제사를 지내지도 않고 신주(神主)를 만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초지종이 밝혀지게 되면서 그는 진산군수에게
체포되어 사형을 당했다. 이유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은 부모에 대한 효를 거부하는 것이고,
부모에 대한 효를 거부하는 것은 나라에 대한 충을 거부하는 것이고, 충을 거부하는
것은 곧 국가에 반역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의 천주교인들은 일대 신앙의
위기를 맞았다. 천주교는 조상제사를 금하는 “무군무부”(無君無夫)의 종교, 즉 아버지도 없고 임금도 없는
사악한 종교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천주교를 보유론적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시도가 허용되지
않게 되고, 유교와 천주교는 같이 갈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교인들은
박해를 받아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재 가톨릭교회는 조상제사를 고유한 풍속의
한 예로 평가절하하여 허용하고 있지만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적어도 1939년까지는 천주교에서도 조상제사를 엄격히 금했다. 그런데 개신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조상제사를 성경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금하고 있다. 기독교가 제사를 금하는 이유는 그것이 부모에 대한 효와는 상관없는 미신행위라고 믿기 때문이다. 제사가 미신이라는 의미는 사람이 제사를 드릴 때 정말 조상신이 내려와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떠돌다가 자손들이 제사를 지낼 때 그곳에 와서 음식을 먹고 그것에 만족하면 자손들에게 복을 주고 자손들이
제사음식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 진노해서 화를 내린다는 이론은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인 것이다. 왜냐하면 죽은 후에 천국이나 지옥에 가지 못하고 이생에서 떠도는 혼령이 있다면 그건 사람의 영혼, 즉 부모의 영혼이 아니라 악한 영, 즉 타락한 천사의 영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기독교인이 제사를 금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효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하는
것이지 돌아가시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는 “무군무부”의 종교가 아니라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정말 잘 섬기고 잘 공경하라고 가르치는 실제적인 효의 종교인 것이다.
우리들이 가끔 경험하는 것이 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별로 효자가 아닌 사람이 부모님이 돌아 가시고 나자
장례식도 거창하게 치르고 묘도 최고 명당자리에 잡는다고 하고 제사도 격식 차려서 드리는 경우를 본다. 왜
그럴까? 그런 행위들의 배후에는 순수함보다는 순수하지 못한 동기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왜 살아 계실 때는 효도하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효도한다고 하면서 제사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가? 물론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제대로 효도하지 못해서 이제 뉘우치는 마음으로 그렇게라도 해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제사를 드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살아계실 때의 부모의 위상과 돌아가시고 난 다음의 부모의 위상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의 부모님의 모습은 어떤가? 힘 없고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존재이다. 적어도 그 나이대의 많은 부모님들이 그렇게 생각하신다.
자식들 중에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연로하신 부모님은 더 이상 한창
일하실 때의 힘 있는 부모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유교의 교리에 의하면 돌아가신 부모님은 귀신이 되어서 후손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준다는 것이다. 힘 없는 존재에서 힘 있는 존재, 더 나아가 무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들이 죽은 부모를 잘 섬기면 부모가 복을 주고 잘못 섬기면 벌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식이 제사를 정성껏 드린다는 것은 부모님이 지난 날 나에게 해주신 것들이 너무나 감사해서 “순수하게” 공경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유익을
바라보며 행하는 기복주의 혹은 이기주의의 결과물인 것이다. 적어도 제사의 사상적 틀을 제공한 주자학의 기본
가르침이 그러한 것이다.
기독교는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최선을 다해서
섬기고 공경하라고 가르치는 효의 종교이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중 제 5계명에 부모공경의 계명이 나오는데, 우리가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주신 열 가지 계명 중에 아홉 가지 계명은 우리가 한 번 기회를 놓쳐도 나중에 돌이켜서 다시 시행할 수 있는 것들이다. 평생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시행할 수 있는 계명들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 등등 이런 계명들은 당장 내가 순종하여 시행하지 못했을지라도 나중에 회개하고 돌이켜서 다시 순종하여 지킬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 계명은 어떤가? 이 계명만큼은 부모님이
살아계실 동안에만 실행 가능한 한시적인 계명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부모님을 공경하고 싶어도,
효도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효도하라는 제
5계명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우리에게 더욱 절실해지고 우리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계명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부모공경은 다른 계명에 비해 독특한 위상을 가진다. 한시적 계명이라는 독특성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최선을 다해 효도를 다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제사 지내는 집에 시집간 며느리의
경우, 혹은 가족들은 다 제사를 드리는데 나만 기독교인인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제사는 우상숭배이니까 제사상 차리는 것을 돕지도 않고 더 나아가 그런 “가족행사”에
참여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일까? 현실적으로 볼 때 필요 이상의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믿지 않는 가족은 우리가 결국 주님께로 인도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은 기독교 신앙을 지키면서 동시에 가족의 화목을 깨지 않으려는 최대한의 배려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제사상 차리는 것은 솔선수범하여 돕지만 절은 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기도를 한다든지 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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