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축복권과 저주권을 가지고 있는가?
Publish on February 22,2016홍삼열
신명기 2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그리심 산에서는 축복을, 에발 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라는 모세의 명령이 나온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이 임하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주가 임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순종을 선택해서 복 받으라는 의미이다. 후에 여호수아 8장에 보면 여호수아는 실제로 모세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둘로 나누어서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서게 하고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서게 한 후에 각각 축복과 저주의 말을 선포하였다. 물론 백성들의 귀에 직접 축복과
저주의 말을 전해주는 것은 레위인 혹은 제사장들의 몫이었다. 여호수아가 먼저 말씀을 낭독하면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친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목회자가 구약시대의 레위인 혹은
제사장 전통을 잇는다고 믿고 목회자의 축복을 받는다. 예배가 끝난 후에 목사의 축도를 받고, 아이의 백일잔치에 목사를 초청해서 축복기도를 받고, 개업이나 결혼이나
생일잔치 같은 행사에 목사를 초청해서 예배를 드리며 축복기도를 받는다. 어떤 경우에는 가족의 어른이
예배를 인도하며 축복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회자가 아닌 사람이 축복을 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담임목사가 아닌 부목사가 축복하는 것도 왠지 이상하고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과연 목사, 특히 담임목사에게만 축복권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일반 신자들에게도 축복권이 있는 것일까?
또 한 가지 이와 관련되는 문제는 저주권이다. 목사에게는 저주권이 있는 것일까? 가끔 인터넷이나 신문에 보면 “저주 설교”에 대한 글이 실리곤 한다. 목사가 설교를 하면서, 목사를 괴롭히거나 욕하면 저주를 받아서 사업이
망하고 교통사고를 당하고 암에 걸리는 등 천벌을 받는다고 외칠 때, 듣는 신자들의 마음속에 심각한 의문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목사에게 축복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저주권도 주신 것일까? 그래서 목사에게는 무조건 잘 해야 하는 것일까?
우선 축복권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축복권은 목사에게만 주어진 것인가? 그래서 목사가 아닌 사람이 다른
사람을 축복하면 아무 효력이 없고, 더 나아가 좋지 못한 부작용까지 생기게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성경에는 모든 사람이 축복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구약시대에는 이삭과 야곱 같은 족장/아버지가 자녀들을
축복하고, 모세와 여호수아 같은 지도자가 백성을 축복하고, 아론으로부터
시작된 제사장들이 온 이스라엘을 축복하였지만, 신약시대에는 모든 성도가 서로를 축복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특정 제사장을 의지할 필요 없이 직접 하나님께 기도하고
직접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미 제사장인 것이다. 이것을 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만인제사장”이란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베드로전서 2:9절,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신약시대에는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 제사장이다. 그래서 구약의 제사장이 가진 하나님과의 직접 소통의 역할과 더불어 축복권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교회에서 목사가 교인들을 축복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신약시대에는 전혀 필요가 없다고 말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성도들의 영적 지도자로서 양무리를 축복하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적 지도자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 옛날 제사장에게만 주어진 특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엄격히 따져서 신약시대에는 모든 성도가 서로를 축복할 수 있고, 아니 축복해야 마땅한 것이다.
로마서 12:14절에
보면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했는데, 이는 목사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일반 신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야고보서
5:16절에도 보면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고 했는데, 이것도 일반 신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따라서 성경의 가르침대로 부모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녀들을 축복하고, 신자들은 서로를 축복하고, 더 나아가 원수들까지도 축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은 저주권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는가? 목사에게는 신자들을 저주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 이성적인 방법으로
도무지 설득이 안 되는 신자들을 인도할 마지막 수단으로 목사에게 저주권이 주어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목사는 영적 지도자로서 교인에게 경고도 하고 책망도 할 수 있지만 저주하는 것은 선을 넘는 것이다.
물론 목사가 어떤 교인 때문에 너무나 큰 고통을 당해서 목회를
지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 저주의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그를 제어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다. 저주의
방법을 통해 그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주어서 더 이상 목사나 교회에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의도를 가지고 저주하는 것은 샤만(무당)이 자기를 거역하는 사람을 저주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예를 들어
샤만이 인형을 하나 만들어서 그것을 바늘로 찌르면 그 사람의 팔이 마비되고 심장이 마비되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게 된다는 미신이 있는데, 만일 목사가 저주의 방법으로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공포심을 조장한다면 이는 샤만이 사용하는
방법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정말 하나님의 교회를 해치고 목사를 부당하게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를 다루실 것이다. 목사가 관여할 일이 아닌 것이다.
갈라디아 3:13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라고 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가 받을 저주의
문제를 다 해결해 주셨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더 이상 저주가 없다. 누가 나를 저주하더라도 절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만일 내가 못된
짓을 하다가 큰 고난을 당한다면 이는 누가 나를 저주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심판하시기 때문인 것이다. 누가
여러분을 저주하는가? 그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선악을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목사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로마서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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