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세상적인 복을 구하는 것은 잘못인가요?
Publish on January 09,2019홍삼열
현재 한국에서 기독교의 위상이 추락하는 것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자성(自省)하고 있다. 왜 기독교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현재 한국 기독교의 모습이 한국사회가 점점 부해지면서 나타나는 자연적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이에 더하여 도덕적 타락을 원인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부해지면 생각과 삶이 나태해지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퇴락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모든 종교는 생로병사의 사이클을 거치기 때문에 기독교도 예외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역사상 이런 사이클과는 별도로 한 번도 침체기를 겪지 않은 종교집단이 없기 때문에 한국 기독교도 현재 일시적 혹은 장기적 침체기를 겪는다는 분석이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한국 기독교는 한국 특유의 샤머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기복주의(祈福主義)를 추구했는데 그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현재 부정적 열매를 거두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생활이 어렵고 이성적 사고가 덜 발달된 상태에서는 샤머니즘에 기초한 기복주의가 사람들에게 큰 매력이 있지만, 현재와 같이 생활이 편해지고 시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질 때는 더 이상 기복주의가 힘을 쓰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더 나아가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은 기복주의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진실한 기독교인, 성서적 기독교인은 세속의 복을 추구하지 않고 언제나 영적인 복을 추구하며, 심지어는 반(反)세속적인 하늘의 복만을 추구하고 주님을 위한 고난의 길을 간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세속의 복을 지향하는 샤머니즘적 기독교를 믿어 왔기 때문에 당연히 침체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위의 분석들이 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기독교의 샤머니즘적 특성을 지적한 분석이 한국 기독교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지역의 기독교에 비해서 왜 한국의 기독교가 그렇게 급성장하고 급쇠락하는 현상을 보이는지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점에서 기복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께 세속적인 복을 구하면 안 되는 것일까? 신앙이 올바른 사람은 하나님께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복, 예를 들어 자녀의 복, 재산의 복, 장수의 복과 같은 세속적인 복을 구하면 안 되는 것일까?
성경을 읽어 보면 성숙한 신앙의 사람도 세속적인 복을 구하고, 하나님께서도 그의 소원대로 응답하시는 예들을 많이 발견한다. 아브라함의 경우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세기 12:2)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이 영적인 복뿐일까? 큰 민족이 되는 것, 그의 이름이 창대하게 되는 것이 육적인 복과는 상관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그에게 약속된 복은 당연히 육적인 복, 특히 자녀의 복과 재산의 복을 포함한다. 신명기 28장에도 보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에게 약속된 복이 나열되어 나오는데 당연이 이 목록에는 세속적인 복이 포함된다.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28:4-5)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28:7)
그러면 신약성경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신약성경은 우리가 영적인 복을 위해서만 기도하라고 가르치는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응답의 내용이 육적인 것 곧 음식에 관한 것이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태복음 7:9-11)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때도 “일용할 양식”을 위해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기도할 때 그것만 구하면 곤란하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위해 기도하고, 그다음에 먹을 것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이 맞다.
신앙이 올바른 사람은 하나님께 영적인 복만 구해야지 세속적인 복은 구하면 안된다는 주장은 성서적 가르침이 아니다. 성경은 세속적인 복 자체를 정죄하지 않는다. 단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목적에서 벗어난 복의 추구를 정죄할 뿐이다. 많은 사람이 “기복신앙”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기독교인으로서 재산, 건강,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면 떳떳하지 못하게 혹은 송구스럽게 기도한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복 받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적으로도 복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아버지가 자기 자녀가 영적으로만 복을 받고 세상적으로는 힘들고 어렵게 살기를 원하겠는가? 그런 아버지는 없다. 자녀가 잘못 사는 것이 아니라면 이왕이면 세상적으로도 복 받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더욱 그러하시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육적으로도 잘 되고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을 보면, 기도문의 전반부는 하나님에 관한 기도, 후반부는 우리의 요구에 관한 기도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구분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전반부는 신령한 기도이고 후반부는 세속적인 기도라고 규정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것은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포함한 여러 일상적인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도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위해서 구하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세상적인 복을 위해 구하는 기도도 목적이 올바르면 신령한 기도 즉 영적인 기도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린도전서 10:31절은 이렇게 권면하는 것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께 세상적인 복을 구하는 것은 잘못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건강을 위해서, 물질을 위해서, 자식 성공을 위해서 당연히 기도해야 한다. 단 이것이 나쁜 종류의 기복신앙이 되지 않기 위해 그 목적이 올바라야 한다.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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