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1월 30일 2023년 Publish on February 02,2023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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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의 산문집에 도마뱀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가 나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일본 도쿄올림픽 때, 스타디움 확장 공사를 위해 주변에 지은 지 3년 되는 집을 헐게 되었습니다. 인부들이 지붕을 해체하려는 순간, 한편에 도마뱀 한 마리가 꼬리 쪽에 못이 박힌 채 벽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몸부림 치는 광경이 목격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3년 동안이나 그 상태로 살아있는 것이 신기해서, 그 원인을 확인해 보기 위해 철거공사를 중단하고 사흘 동안 그 도마뱀을 지켜보기로 결정합니다. 그 결과,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나타나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아무리 미물이라지만 도마뱀도 몸부림칠 때마다 살을 찔러오는 고통을 고스란히 느꼈을 것입니다. 도마뱀은 원래 사람의 손에 꼬리가 잡히면 그 꼬리를 잘라버리고 도망치는 파충류인데 아마 꼬리를 잘라버릴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게 분명합니다. 극한 고통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도마뱀은 생사의 경계를 경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죽을 수도 없어 간신히 생명을 부지하고 있던 도마뱀을 위해 끝까지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먹을 걸 날라 주던 또다른 도마뱀의 모습입니다. 작가는 글에서 이 이야기를 전하며 묻습니다. 자기를 위해 때마다 먹이를 날라 주던 그 도마뱀을 보면서, ‘과연 도마뱀은 그 때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라고 말입니다.
도마뱀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악의 굴레에 갇혀서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신세인 우리가 고통의 심연에 몸부림치면서도 기나긴 세월을 버텨올 수 있었던 건 늘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고 영의 양식을 때마다 먹여 주신 하나님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상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에 빗대어, 절망하는 도마뱀을 살린 것은 또다른 도마뱀이 물어다 준 음식이 아니라 그 곁을 끝까지 떠나지 않고 지켜 준 사랑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한 감정이입일까요?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 교회의 비전과 목회의 방향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마치 “거리의 광대”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극장 배우”는 잘 갖추어진 무대 위에서 주어진 각본에 따라 움직입니다. 하지만 거리의 광대는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라면 어떤 환경도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지켜 볼 관객이 없어도 우연히 지나치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선 누군가에게 쉼을 제공해 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공연에 만족을 얻기 때문입니다. 무료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순간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은 묵묵히 곁을 지키고 계신 하나님의 사랑에 기대어 자신만의 스토리를 실현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환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의 광대처럼 그리스도의 뜻을 펼치기 위한 인생극을 써내려가는 것이지요. 그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자못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