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열심을 가집시다 Publish on July 08,2020 | 홍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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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교회는 초대교회 일곱 교회 중 유일하게 책망만 들은 교회이다.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가? 신앙이 미지근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신앙생활은 미지근하면 안 된다. 열심히 해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게으른 사람이 좋은 신앙을 가지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신앙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반드시 열심을 내야 좋아진다. 많은 사람이 오해한다. 예수 믿고 교회 다니기 시작하면 큰 노력 없이도 믿음이 자란다고 오해한다. 그런데 그건 철저한 착각이다. 열심을 내지 않으면 절대 믿음은 자라지 않는다.
열심을 내지 않고 대충 신앙생활 하는 사람에 대해 예수님은 이런 경고의 말씀을 하셨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요한계시록 3:16). “그래도 믿음이 뜨듯 미지근하단 말은 아직 어느 정도 믿음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아직 열기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어쨌든 천국에 가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그런 사람은 예수님이 입에서 토해내신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받아주실 수 없어서 토해내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과연 믿음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해야 할까?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신앙생활에서 열심은 좀 유별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필수사항이다. 사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열심을 내야 성공할 수 있다.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야 학문에 성공할 수 있다. 사업하는 분은 당연히 자기의 분야에서 열심을 내야 성공한다. 스포츠 선수도 땀 흘리는 열심을 내야 성공한다. 하물며,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영생이 걸려 있는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열심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대충 살았는데 20년 지나고 보니까 신앙이 1등급이 되는 사람은 절대 없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로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로 채워 주시면 우리가 1등급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열심이 있다고 해서 다 신앙생활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열심을 내되 올바른 열심을 낼 때 신앙생활에 성공한다. 사실, 잘못된 열심은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죽인다. 자신도 그것 때문에 죽는다. “그들이 [이단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갈라디아서 4:17~18) 여기에 좋은 열심과 나쁜 열심을 대비하고 있다. 갈라디아의 교인들은 처음에 좋은 열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중간에 이단이 들어와서 나쁜 일에 열심 내도록 유혹했다는 것이다. 열심히만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는 신앙에 대한 열심을 볼 때 이것이 올바른 열심인지 잘못된 열심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을 잘 분별하지 못하면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낸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참된 기독교적 열심과 가짜 사이비 열심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어떤 기준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가? 첫 번째 기준은 사랑이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 일을 정말 열심히 하는데 그 이유가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건 아무리 예쁘게 포장해도 기독교적 열심이 아니다. 그런 잘못된 동기로 열심을 내면 교회를 세우기는커녕 허물게 된다. 또 어떤 사람은 시기심 때문에 열심을 낸다. “나는 저 사람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너무나 싫어. 자존심 상해서 안 되겠어. 나도 맞불을 놔야지. 나는 그와 반대로 이것을 열심히 해야지.” 이런 식으로 열심을 낸다면 이것도 역시 기독교적 열심이 아니다. 단순히 인간적인 열심일 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심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열심을 내면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망가진다. 우리는 열심의 근본 동기가 무엇인지 잘 살펴야 한다. 사랑의 동기가 아닌 다른 동기로 열심 내는 것은 하나님께 죄 짓는 것이다.
올바른 열심과 잘못된 열심을 구분하는 두 번째 기준은 인내이다. 올바른 열심이 있는 사람은 인내할 줄 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겉으로 보면 정말 주님을 위해서 열심을 내는 것 같은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불평하는 사람, 더 나아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은 기독교적 열심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기다리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스데반의 경우, 열심히 복음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때 마음속에 불만을 가득 품고 죽었나? 분노하면서 죽었나? 아니다. 그는 주님의 영광을 보면서 하늘의 평안을 가지고 죽었다. 마음에 불만이 하나도 없이 오히려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까지 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을 위해 열심이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진정으로 기독교적 열심이 있는 사람은 불만이 없다. 초조함이 없다. 언제나 감사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나보다 현명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는 가장 좋은 때는 언제나 하나님이 아시고 그에 따라 결정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충분히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다. 인내하는 열심이 진정한 열심이다.
그다음 올바른 열심과 잘못된 열심을 구분하는 기준은 겸손이다. 어떤 사람이 주님을 위해 열심이 있다고 하는데 그 열심 안에 겸손이 없다면 그 열심은 가짜다. 열심히 일은 하는데 꼭 자기 자랑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또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을 가망성이 없는 일은 아예 안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기독교적 열심과는 상관없는 사람이다. 또 일은 열심히 하는데 자기가 최고라는 우월감에 사로잡혀서 꼭 남을 가르치려 하고 남에게 지시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역시 기독교적 열심과는 상관없는 사람이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교만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일을 열심히 할수록 하나님의 일은 망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는 무너진다. 올바른 열심을 통해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되자.